2009년 06월 13일
chapter 1. 천사와 악마
교황이 갑작스럽게 선종한 후, 새로운 교황을 뽑는 선거 콘클라베(conclave)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든다. 진홍색 옷을 입은 그들이 줄지어 대리석 계단을 올라 묵직한 목재 문으로 들어서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강건한 근육의 인물들이 약동하는 벽화가 눈앞에 나타난다(사진 1). 그리고 그 위로 역시 장려한 인물 군상으로 가득 찬 궁륭의 천장이 펼쳐진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의 대작으로 장식된 시스티나 경당이 바로 콘클라베 장소인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이렇게 초반부터 눈을 즐겁게 하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1) 콘클라베가 열리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과 그 안 미켈란젤로의 벽화가 그대로 재현된
‘천사와 악마’ LA 세트장
이 영화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논쟁적인 소설로 기억될 『다빈치 코드(2003)』의 작가 댄 브라운이 그보다 앞서 쓴 소설 『천사와 악마(2000)』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먼저 영화화된 '다빈치 코드'가 소설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것에 실패해 산만하고 맥 빠진다는 비난을 많이 받은 반면에 같은 감독 론 하워드가 만든 ‘천사와 악마’는 깔끔하고 긴장감 있다는 평이 많다. 대신에 원작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평이 엇갈리는 와중에도 관객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당장 바티칸 관광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
실제 시스티나 경당의 벽화
정면 벽 그림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작 
2)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1600), 카라바조 작
캔버스에 유채, 230 x 175 ㎝,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로마
‘천사와 악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작품 중 주목할 것 하나는 초기 바로크 회화의 거장인 카라바조(1571~1610)의 그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사진2)다. 카라바조 특유의 강렬한 명암 대비로 인한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는 환한 빛을 받고 있고 십자가를 세우는 일꾼들의 얼굴은 화면에서 돌려져 있거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십자가는 왜 거꾸로 들어올려지고 있을까. 예수의 수제자인 그는 감히 그리스도와 똑같은 방법으로 순교할 수 없다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자청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걸려 있는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은, 영화에서 과거 가톨릭의 탄압으로 사라진 과학자들의 비밀결사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후계자라고 자칭하는 괴한이, 납치한 4명의 교황 후보 중 첫 번째 추기경을 살해하는 곳이다. 이 그림은 주인공 랭던 교수가 희생자를 찾는 과정에 잠깐 스치듯 나올 뿐이지만, 영화의 핵심 사건이 새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테러 위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등장이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바로 12사도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의 후계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피해자의 가슴에 교황 문장의 낙인이 거꾸로 찍힐 때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로마
GNU에 따라 공유되는 사진. 원작자 Saliko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미술작품은 바로크 조각의 대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의 조각 ‘성녀 테레사의 법열’(사진3)일 것이다. 이 작품은 16세기에 수도회 개혁 운동을 했고 사후에 성녀로 인정된 아빌라의 수녀 테레사의 신비체험을 다룬 것이다. 성녀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아름다운 천사가 황금 창을 들고 나타나 창의 불타는 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환영을 접했다고 한다. 천사가 창을 빼는 순간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나 동시에 신의 사랑에 대한 환희로 불타올랐고 “그 고통의 감미로움이 더 컸기에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신비한 법열의 상태를 절묘하게 시각화한 베르니니의 작품에서, 성녀의 휘몰아치는 옷자락, 몸을 거의 눕힐 듯 뒤로 젖힌 목, 눈동자가 넘어간 채 반쯤 감긴 눈, 탄성을 내지르듯 반쯤 벌린 입은 거칠고 무한한 황홀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런 모습은 관능적인 쾌락의 절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 성녀의 성(聖)과 성(性)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표정을 가리키면서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정신적인 황홀경과 육체적인 황홀경의 기묘한 공통성을 논하곤 했다. 사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전에는 영적 환희의 절정과 성적 환희의 절정이 실현된 모습이 비슷하지 않겠는가.
이 ‘타오르는 듯한’ 성녀 테레사의 조각이 자리잡은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서 세 번째 추기경의 화형이 벌어진다는 영화의 설정은 재미있는 그림 맞추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베르니니도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다는 설정에는 고개를 내저을 사람이 많을 테지만 말이다. 실존했던 일루미나티는 그 라틴어 이름이 계몽된 사람들을 뜻하듯이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의 시대에 설립됐다. 게다가 설령 베르니니가 활동하던 17세기에 비밀조직으로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종교개혁에 맞서 로마 가톨릭의 권위를 세우는 미술 작업에 열심이었던 베르니니가 숨은 일루미나티였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 뒷부분에 나오는 산탄젤로 성 Castel Sant'Angelo 의 대천사 미카엘 청동상은 이 성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본래 이 성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였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교황청의 요새처럼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6세기 말 페스트가 창궐할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이 성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칼을 칼집에 넣는 환영을 본 후 페스트가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성은 산탄젤로(성 천사)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탄젤로 성 꼭대기 대천사 미카엘의 청동상 (1748)
베르샤펠트 Peter Anton von Verschaffelt (1710–1793) 작
Original photo by Sylvie Boterdaele
post-processed and uploaded by Alessio Damato (with permission of the author)
대천사 미카엘의 전설을 기념해서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 그 조각상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라파엘로 다 몬테루포의 대리석상이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작품인 베르샤펠트의 청동상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이 대천사의 조각이 등장한 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태초에 아름답고 강력해서 오만에 빠진 천사 루치페르(Lucifer 루시퍼)가 신에게 반역을 일으켰을 때, 루치페르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을 물리쳐 땅으로 떨어뜨린, 역시 아름답고 강력한 전투의 천사가 바로 미카엘인 것이다. 그후 루치페르는 사탄(Satan)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를 따르던 타락천사들은 악마(demon)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은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 의 태초의 전쟁을 다룬 예술작품에는 언제나 미카엘이 등장해왔다.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서 페스트의 종말을 선언하며 칼을 칼집에 넣는 미카엘의 모습은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카엘의 도상을 따르고 있다.
# by | 2009/06/13 19:41 | - Movie & Art | 트랙백(1)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
아 이런 어이없는! 위 사진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을 본뜬 본 영화의 세트장(!)라고(사진출처). 바티칸의 건축, 미술을 배경으로 삼는 화려한 화면 색채, 카톨릭 전통 문화와 그 역사에 담긴 비화가 뿜어대는 신비스러움, 전면에 배치되어 '우주 탄생'을 논하는 최신 물리학이 끄는 호기심... 이들 요소만 어떻게 잘 표현하고 얼버무리면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만큼 뒷 배경이 화려한 만큼 스토리 자......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