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 내용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정보 얻어가시길 바래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지금 보이는 그림은 Gustav Klimt 의 "The Kiss" 라는 작품입니다.






by WHOOO | 2009/06/13 20:50 | 트랙백 | 덧글(0)

chapter 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십자가 장면은 여러 성화 중에서도 신비에 싸인 15~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1528)의 ‘성 이젠하임 제단화'를 가장 많이 닮았다. 이 그림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일말의 미화도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피부는 거무죽죽하고 상처투성이며, 못이 박힌 손발은 보는 사람까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참혹하게 휘어지고 뒤틀렸다. 예수의 표정 또한 극도의 고통으로 기진맥진해 있다.

 

십자가형 (성 이젠하임 제단화) (1515), 그뤼네발트 작 목판에 유채, 269x307㎝, 운터린덴 박물관, 콜마르 

   이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1483~1520)의 제단화(사진 2)와 정확히 대비된다. 조화로운 색채와 단아한 형태로 고전주의의 모범이 된 라파엘로의 그림답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도 여전히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그의 얼굴은 숭고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원근법이 엉망인 그뤼네발트의 그림과 달리 그림 전체의 균형도 잘 잡혀 있다.

십자가형 (1502~03), 라파엘로 작 목판에 유채, 281x165㎝, 내셔널 갤러리, 런던 


   하지만 라파엘로의 그림은 결코 그뤼네발트의 그림이 주는 충격과 절절한 슬픔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그뤼네발트의 제단화는 교회 부속 나병 환자 병원을 위해 그려진 그림인데, 나병 환자들이 자신들의 몸처럼 상처로 문드러진 예수의 몸을 보며 얼마나 동병상련을 느꼈을까. 또 가운데를 펼칠 수 있는 이 그림의 다음 장면, 즉 깨끗한 모습으로 광휘를 발하며 부활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얼마나 환희를 느꼈겠는가. (아래 보충설명2 참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이 만들어낸 감정의 폭풍이야말로 바로 멜 깁슨이 의도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잘 모르고 별 반감도 없는 무교나 타 종교의 사람들 중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반면 진보적 기독교 성직자와 신자들은 이 영화가 성경 해석에 극도로 보수적인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유다는 그저 비열해 악마에게 놀아나는 인간으로 나타나 있는데, 왜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후 나중에는 후회하며 자살까지 했는지에 대해 별로 설득력 있게 그리지 못한다. ‘유다복음’ 같은 도발적인 주장은 제쳐 놓더라도 보다 역사적으로 설득력 있으면서 기존 교리에 크게 위배될 것도 없는 이론들이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그중 하나는 유다가 요즘으로 치면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같은 젤롯당(Zealot)의 일원이었으며, 예수가 무력으로 로마를 무찌르고 유대인을 해방시키는 현세적인 메시아가 되어 주기를 기대했건만 그렇지 못했기에 절망감과 자기 나름의 배신감에서 등을 돌렸다는 설이다.

   어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보다 생생한 이미지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어머니 마리아와 교환하는 애틋하면서도 초월적인 시선들은 이 영화에 대한 갖가지 불만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회상 장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유다의 해석도 그렇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막달라 마리아)의 해석에 있어서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의 회상 장면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그녀를 예수가 구해주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보면, 복음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누구든지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름 없는 간음한 여인이 막달레나와 동일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매춘부나 타락한 여인이었었다는 언급도 성경에는 전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로지 그녀가 일곱 악령에 시달리다가 예수의 치료를 받고 나은 후 자기 재산을 바쳐 예수 일행을 도왔으며 십자가 옆을 끝까지 지켰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누구보다도 먼저 목격했다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복음서에 나오는 타락했다 회개한 여인들과 모두 동일시해버리는 관습은, 6세기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막달레나가 다른 에피소드에 나오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회개한 죄 많은 여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견해를 보이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천주교 교회에서도 1969년에 이 견해를 전례 문서에서 삭제했다.

선정적이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코지모 Piero di Cosimo (1462-1521)의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가 전직 매춘부라는 증거가 없다는 지적과, 그런데도 중세 교회에서 그녀를 회개한 창녀의 이미지로 몰아간 것은, 여성으로서 남성 사도들보다도 앞서서 그리스도 부활의 첫번째 증인이 된 그녀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겠냐는 의심은 사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진보적인 성직자들과 신학자들 사이에 제기되어 왔다. 나 또한 그런 견해의 책을 '다빈치 코드'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접한 적이 있다. 이런 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전직 매춘부라는 오해 때문에 예술에서도 주로 선정적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한탄하는데, 티치아노의 에로틱한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들 학자들 중 대부분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와 결혼했다는 '다빈치 코드'의 주장 역시 근거 없고 선정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한마디로 이들의 주장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매춘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예수의 아내도 아니었으며, 한 인간이자 예수의 제자이자 교회 지도자로서 그녀를 다시 봐야한다는 것인데,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by WHOOO | 2009/06/13 20:01 | - Movie & Art | 트랙백 | 덧글(0)

chapter 1. 천사와 악마


  교황이 갑작스럽게 선종한 후, 새로운 교황을 뽑는 선거 콘클라베(conclave)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 추기경들이 바티칸으로 모여든다. 진홍색 옷을 입은 그들이 줄지어 대리석 계단을 올라 묵직한 목재 문으로 들어서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강건한 근육의 인물들이 약동하는 벽화가 눈앞에 나타난다(사진 1). 그리고 그 위로 역시 장려한 인물 군상으로 가득 찬 궁륭의 천장이 펼쳐진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의 대작으로 장식된 시스티나 경당이 바로 콘클라베 장소인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이렇게 초반부터 눈을 즐겁게 하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1) 콘클라베가 열리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과 그 안 미켈란젤로의 벽화가 그대로 재현된
‘천사와 악마’ LA 세트장

    이 영화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논쟁적인 소설로 기억될 『다빈치 코드(2003)』의 작가 댄 브라운이 그보다 앞서 쓴 소설 『천사와 악마(2000)』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먼저 영화화된 '다빈치 코드'가 소설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것에 실패해 산만하고 맥 빠진다는 비난을 많이 받은 반면에 같은 감독 론 하워드가 만든 ‘천사와 악마’는 깔끔하고 긴장감 있다는 평이 많다. 대신에 원작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평이 엇갈리는 와중에도 관객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당장 바티칸 관광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

실제 시스티나 경당의 벽화

정면 벽 그림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작

   ‘천사와 악마’에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거장들이 바티칸에 남긴 건축 명소와 회화·조각이 수없이 등장한다. TV나 관광엽서에 지치도록 등장하는 곳들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데, 그만큼 이 영화의 촬영이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바티칸이 아니라 바티칸의 명소들을 정교한 세트로 재현한 LA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지만 말이다.

 

2)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1600), 카라바조 작

 캔버스에 유채, 230 x 175 ㎝,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로마 

 

   ‘천사와 악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작품 중 주목할 것 하나는 초기 바로크 회화의 거장인 카라바조(1571~1610)의 그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사진2)다. 카라바조 특유의 강렬한 명암 대비로 인한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는 환한 빛을 받고 있고 십자가를 세우는 일꾼들의 얼굴은 화면에서 돌려져 있거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십자가는 왜 거꾸로 들어올려지고 있을까. 예수의 수제자인 그는 감히 그리스도와 똑같은 방법으로 순교할 수 없다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자청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걸려 있는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은, 영화에서 과거 가톨릭의 탄압으로 사라진 과학자들의 비밀결사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후계자라고 자칭하는 괴한이, 납치한 4명의 교황 후보 중 첫 번째 추기경을 살해하는 곳이다. 이 그림은 주인공 랭던 교수가 희생자를 찾는 과정에 잠깐 스치듯 나올 뿐이지만, 영화의 핵심 사건이 새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테러 위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등장이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바로 12사도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의 후계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피해자의 가슴에 교황 문장의 낙인이 거꾸로 찍힐 때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3) 성녀 테레사의 법열(1647~52),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작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로마

GNU에 따라 공유되는 사진. 원작자 Saliko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미술작품은 바로크 조각의 대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의 조각 ‘성녀 테레사의 법열’(사진3)일 것이다. 이 작품은 16세기에 수도회 개혁 운동을 했고 사후에 성녀로 인정된 아빌라의 수녀 테레사의 신비체험을 다룬 것이다. 성녀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아름다운 천사가 황금 창을 들고 나타나 창의 불타는 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환영을 접했다고 한다. 천사가 창을 빼는 순간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나 동시에 신의 사랑에 대한 환희로 불타올랐고 “그 고통의 감미로움이 더 컸기에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신비한 법열의 상태를 절묘하게 시각화한 베르니니의 작품에서, 성녀의 휘몰아치는 옷자락, 몸을 거의 눕힐 듯 뒤로 젖힌 목, 눈동자가 넘어간 채 반쯤 감긴 눈, 탄성을 내지르듯 반쯤 벌린 입은 거칠고 무한한 황홀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런 모습은 관능적인 쾌락의 절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 성녀의 성(聖)과 성(性)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표정을 가리키면서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정신적인 황홀경과 육체적인 황홀경의 기묘한 공통성을 논하곤 했다. 사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전에는 영적 환희의 절정과 성적 환희의 절정이 실현된 모습이 비슷하지 않겠는가.

   이 ‘타오르는 듯한’ 성녀 테레사의 조각이 자리잡은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서 세 번째 추기경의 화형이 벌어진다는 영화의 설정은 재미있는 그림 맞추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베르니니도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다는 설정에는 고개를 내저을 사람이 많을 테지만 말이다. 실존했던 일루미나티는 그 라틴어 이름이 계몽된 사람들을 뜻하듯이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의 시대에 설립됐다. 게다가 설령 베르니니가 활동하던 17세기에 비밀조직으로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종교개혁에 맞서 로마 가톨릭의 권위를 세우는 미술 작업에 열심이었던 베르니니가 숨은 일루미나티였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 뒷부분에 나오는 산탄젤로 성 Castel Sant'Angelo 의 대천사 미카엘 청동상은 이 성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본래 이 성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영묘였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교황청의 요새처럼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6세기 말 페스트가 창궐할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이 성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칼을 칼집에 넣는 환영을 본 후 페스트가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성은 산탄젤로(성 천사)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탄젤로 성 꼭대기 대천사 미카엘의 청동상 (1748)

베르샤펠트 Peter Anton von Verschaffelt (1710–1793) 작

Original photo by Sylvie Boterdaele

post-processed and uploaded by Alessio Damato (with permission of the author)

   대천사 미카엘의 전설을 기념해서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 그 조각상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라파엘로 다 몬테루포의 대리석상이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작품인 베르샤펠트의 청동상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이 대천사의 조각이 등장한 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태초에 아름답고 강력해서 오만에 빠진 천사 루치페르(Lucifer 루시퍼)가 신에게 반역을 일으켰을 때, 루치페르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을 물리쳐 땅으로 떨어뜨린, 역시 아름답고 강력한 전투의 천사가 바로 미카엘인 것이다. 그후 루치페르는 사탄(Satan)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를 따르던 타락천사들은 악마(demon)가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은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 의 태초의 전쟁을 다룬 예술작품에는 언제나 미카엘이 등장해왔다.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서 페스트의 종말을 선언하며 칼을 칼집에 넣는 미카엘의 모습은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카엘의 도상을 따르고 있다.

성 미카엘 (1663)

조르다노 Luca Giordano (1632-1705) 작

 

    이 영화는 악마의 무리를 무찌르는 대천사 미카엘이 되고자 한, 그러나 자신은 반드시 미카엘일 것이고 상대방은 반드시 사탄일 것이라는 독선과 오만에 빠져 칼을 휘두르다가 스스로가 타락천사가 되어버린 인간 혹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by WHOOO | 2009/06/13 19:41 | - Movie & Art | 트랙백(1) | 덧글(0)

chapter 2. 어른을 위한 동화

새들의 창조 Creación de las Aves (1958)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51x61cm, 개인 소장

 

   레메디오스 바로는 세계를 이해하는 원리로서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으로서 양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주의와 과학에 모두 흥미를 가졌고, 이것은 결국 신비주의와 과학의 중간단계에 있는 연금술에 대한 관심과 탐구로 이어졌다. 이런 탐구에는 레오노라 캐링턴이라는 영국 출신의 화가가 동참하곤 했는데, 바로는 그녀와 처음에 파리에서 만났고 멕시코 망명 중에 더욱 절친해져서 서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곤 했다고 한다. 바로의 많은 그림들이 연금술과 관련이 있다. 위의 그림에서는 연금술사이자 예술가인 올빼미 모습의 존재가 (올빼미는 그리스 신화의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신조이다.) 아마도 천체나 지상의 자연으로부터 얻은 색색의 안료로 새를 그린 다음 거기에 삼각형 렌즈로 모은 별빛을 비추어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바로의 그림들에는 별들의 움직임이 인간의 건강과 운명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보는 점성술의 영향도 나타난다.

이그나시오 차베스 의사의 초상 Restrato del doctor Ignacio Chavez (1957)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93x61cm, 개인 소장

 

   레메디오스 바로 자신은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차베스 의사의 의뢰를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결정으로 이루어진 동굴에 있는 인물이 의사 본인입니다. (중간 생략) 그는 손에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좁은 협곡에서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심장 위치에 작은 문이 있어, 그녀들이 지나칠 때 의사는 문에 열쇠를 돌려서 엽니다. 이들 인물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꼭두각시 인형과 같아서 팔꿈치와 무릎과 발꿈치의 작은 바퀴에 이어진 실과 별자리인 게자리별에 이어진 실로 움직입니다. 고대 생리학 책에 따르면, 다시 말해 내가 읽은 여러 권의 책에 의하면, 이 별자리는 심장과 관련된 질병과 사항을 제어하고 있습니다. (출처: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

소용돌이 통로 Tránsito en Espiral (1962)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100x115cm, 개인 소장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기이한 모양의 탈 것들 - 달걀이나 튤립을 연상시키는 둥그스름한 모양에 승객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 이것들은 중세 플랑드르의 가장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화가로서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은 히에로니무스 보슈 Hieronymus Bosch (1450?~1516) 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보슈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그림 "세속적 쾌락의 정원 (1504)" 중 일부분

되살아나는 정물 Naturaleza Muerta Resucitando (1963)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유채, 110x80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레메디오스 바로 최후의 완성작으로, 원탁의 촛불을 중심으로 접시와 과일들이 마치 거대한 은하계처럼 회전하고 있는 그림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마술적인 그림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한 가지를 간과했었다. 맨 바깥에 돌고 있는 과일이 깨지면서 거기에서 씨가 떨어져서 바닥에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파괴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쉽게 압축적으로 나타낸 그림인 것이다.

 

   이 작품을 끝낸 후 바로는 다음 작품을 제작하다가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아직 왕성히 활동할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그림이 그녀의 최후의 메시지가 되고 말았는데, 비록 그녀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쉬우면서도 우주적인 깊이를 가진 작품은 과연 최후의 메세지로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by WHOOO | 2009/06/13 19:22 | - Remedios Varo | 트랙백 | 덧글(0)

chapter 1. 몽환

천체를 잡는 사람 Cazadora de Astros (1956)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종이에 혼합재료, 48x34cm, 개인 소장

  레메디오스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의 몽환적인 그림들을 처음 봤을 때는 어떤 동화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잠자리채로 초승달을 잡은 사람이라든지 피 대신 붉은 과일과 꽃의 즙을 빨아먹는 흡혈귀라든지 그런 소재 자체가 동화적이고, 그려진 스타일도 예쁘고 나이브하니까 말이다.

채식주의 흡혈귀 Vampiros Vegetarianos (1962)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캔버스에 유채, 90x60cm, 개인 소장

 

   하지만 이 그림들은 일반적인 동화 일러스트레이션과 달리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이 아니었다. 특히 인물들의 야윈 올빼미 같은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병적이고 불길한 느낌도 풍겼다. 이런 그림들이 들어간 동화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그녀는 동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초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녀의 그림들은 어떤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삽화가 아니라 그 자체가 독립된 이야기인 셈이다.


미메시스 Mimetismo (1960)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47x49cm, 개인소장

 

   이를테면 이 재미있는 그림에 대해서 레메디오스 바로 자신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미메시스'로 인해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 부인은 상당히 오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에 팔걸이의자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의자의 천처럼 변했고 양팔과 양다리는 구부러진 나무손잡이와 나무다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구들은 심심하고 따분한지 팔걸이의자는 테이블을 갉아먹습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의자는 서랍 안을 뒤지고,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돌아온 고양이는 이러한 변형에 깜짝 놀라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



   초현실주의 Surrealism 하면 대개는 살바도르 달리나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처럼 충격적일 정도로 기괴한 인물이나 사물이 등장하고 비틀린 에로티시즘을 물씬 풍기는 그림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도발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바로의 그림들이 초현실주의라니 좀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녀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상상과 어딘지 불안한 분위기는 자유연상과 억눌린 무의식의 표출이라는 초현실주의 예술의 특징과 잘 맞아떨어진다. “천체를 잡는 사람”이나 “미메시스” 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녀의 그림에는 구속되는 것 – 타인에 의해서든 자기자신에 의해서든 – 과 수동적인 상태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스며있다. 그리고 여기에 가미되는 시니컬한 유머와 위트가
바로의 독특한 매력인 것이다.

불화 (1955)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91.5x56cm, 개인 소장

 

   많은 화가들이 그렇겠지만,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들은 그녀가 개인사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면 이 그림은 그녀가 수녀원 학교를 떠날 때의 기억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 데 레메디오스 바로 위 우랑가”라는 엄청나게 긴 본명을 가진 그녀는, 어린 시절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고집으로 수녀원 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규율에 얽매이고 폐쇄적인 수녀원 학교 생활을 책과 몽상에 의지해서 버텨나갔다고 한다. 마침내 보다 진보적인 성향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16세 때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위의 그림에서, 바로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마도 수녀원 학교인 음침한 건물을 뒤로 하고 걸어가고 있다. 적의를 품은 것 같은 기괴하고 섬뜩한 얼굴들이 창문마다 내려다보고 있고 과거의 기억은 종이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하지만 이 주인공의 앞길도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불길한 긴 그림자를 끌면서 고독하게 불확실함으로 가득찬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방랑자 Vagabundo (1957)

바로 Remedios Varo (1908-1963) 작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56x27cm, 개인 소장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에는 방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 또한 그녀의 개인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파냐 내전으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어려워진 바로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에른스트 등 초현실주의 예술의 리더들과 교류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1940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그곳을 떠나 갖은 고생 끝에 멕시코로 망명하게 된다. 그녀는 처음에는 멕시코에 영구 정착할 생각이 아니었고,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예술적 견해의 차이 때문이었는지, 디에고 리베라나 프리다 칼로 같은 멕시코 태생의 거장들보다는 유럽에서 망명한 화가들과 주로 교류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멕시코에 남게 되었다. 그녀는 멕시코의 자연을 사랑했고 주민들의 독특한 신앙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절반쯤은 여전히 이방인이자 방랑자로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방랑하는 사람의 테마는 레메디오스 바로 예술의 궁극적 목표 - 영혼의 자유 - 를 얻기 위해 떠나는 정신의 여행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애착이나 반대로 혐오스러운 기억, 두려움 등등이 그런 여행에 장애물이 되기 마련이고, 그런 점들은 위의 그림에 대한 그녀 자신의 설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에 방랑자를 위한 옷의 디자인이 있습니다만, 이 경우 방랑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동 수단으로 앞바퀴가 달려 있으며 지팡이를 들어올리면 멈춥니다. 의복은 밤이 되면 철저하게 닫히고 열쇠를 채우는 자그마한 문까지 있습니다. (중간 생략) 옷의 한쪽은 벽감처럼 움푹 들어가 있어 거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초상화가 걸려 있고 책들도 있습니다. 방랑자의 가슴에 걸려 있는 화분에는 장미꽃이 피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이 숲에서 만난 그 어떤 식물보다도 멋있고 아름답습니다. 그에게는 초상화, 장미(현실의 집에 있는 작은 정원에 대한 향수를 상징합니다)와 자신의 고양이가 필요합니다. 즉 그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출처: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



by WHOOO | 2009/06/13 19:17 | - Remedios Varo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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